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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종료

· 약 8분
gendalf9

재택근무

코로나 발생 이후 약 3년여간의 재택근무를 마무리짓고 내일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21세기가 되면 다들 화상통화를 하고 재택근무를 할 것이라 이야기되긴 했지만, 사실상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느껴졌었습니다. 분명 기술적인 기반은 준비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인식의 문제 등으로. 팔란티어(구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김민영 저)라는 소설에서 묘사되었던 월 1회 출근 및 회의를 하면서 교외의 한가로운 아파트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동경했었습니다.

판데믹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고 그 중 하나가 근무형태였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서도 아니고, 그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을 막기 위해 시작이 되었고 처음에는 그래서 집에 갖혀있는 느낌을 갖기도 했습니다. 며칠 안되어서 끝날 임시 조치라고도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게 1주가 한달이 되고 그 한달이 1년이 되며 그렇게 3년간을 이어왔었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원치 않게 시작되었던 재택근무이지만 막상 끝난다고 생각하니 좀 많이 섭섭하네요.

재택근무 기간 동안 한 회사에서 계속 근무를 하긴 했습니다만, 그 안에서도 재택근무로 근무 형태가 바뀌기 전부터 수년간 일해왔던 팀에서 보냈던 시간과, 완전히 새로 구성된 팀에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일 해온 기간이 섞여있으니, 확실히 그 체감이 다르긴 했습니다.

수년간 일해왔던 분들과 일을 해올 때는 조금 갑갑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같으면 바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같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코드를 고민하거나, 칠판에 혹은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계 이야기를 했던 것들이 전부 화상회의로 바뀌면서 이전처럼 이야기를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화면 공유는 해상도가 떨어지고 딜레이가 있어서 보기가 쉽지 않았고, 칠판은 아이패드와 애플펜슬로 어떻게 해보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잘 동작하지 않는 한계점도 분명 있었습니다.

새로운 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그리고 마침 그 팀이 전사 지원부서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터라, 새 팀원들 뿐 아니라 다른 협업하는 분들도 얼굴 한 번 마주쳐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었다보니 역시 가장 힘든 건 문장만으로 대체 뭘 요청하는 건지 어떤 분위기인지 읽을 수가 없는게 제일 컸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화상회의를 요청하는거도 쉽지 않았고, 회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상회의를 하면서 카메라를 켜지 않았다 보니 더더욱 이런 부분이 심해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어떤 점에서는 분명 재택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스몰 토크가 부족해졌다 라곤 하지만, 반대로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냥 출근할 때 보단 분명 일을 더 많이 하는 느낌이었고, 이는 어느정도 판데믹이 일상이 되어가면서 주 1회 출근하게 되니 더더욱 두드려졌습니다. 1회 출근했을 때는 미뤄놨던 대면회의들을 몰아서 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을 신경쓰면서 더더욱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하루였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없어지는 부분과 교통비가 줄어드는 부분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뭘 어떻게 해도 결국 집 문에서 사무실 문까지, 흔히들 말하는 도어 투 도어는 1시간 가량 소모되었었고, 그렇게 2시간 가량의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집안에 좀 더 신경쓴다거나, 공부와 취미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해왔던 시간 중 요 3년간이 가장 많이 개발서적을 읽고 공부를 할 수 있었네요.

그래서, 원치 않게 다가온 재택근무였고, 초기에는 친한 사람들을 볼 수 없어서 가벼운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만, 어떻게든 적응을 하고 이제는 생활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끝이 왔네요.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해진 출근일 제외 보통의 경우 재택을 하다가 출근을 하는 3:2 정도의 비율로 병행을 해도 좋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아직 사회가 재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듯 하여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재택이 일반적인 근무 형태가 되길 바래봅니다.